🟨 서론
원격근무가 일상이 된 지금,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일하며 살고 싶은 IT노동자들이 늘고 있다. 필자는 그중 한 명으로, 경상북도 북부의 작은 군 단위 지역인 봉화군에서 4주간 디지털노마드 생활을 직접 체험했다. 과연 봉화군처럼 인프라가 제한적인 지역에서도 IT업무가 가능할까? 인터넷 속도, 근무공간, 생활비, 지역 사람들과의 관계, 심리적 변화까지 실제로 체험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상세히 정리해 본다. 이 글은 도시를 떠나 시골살이를 고민하는 IT노동자에게 실질적인 정보가 될 것이다.
🟦 본문
1. 왜 하필 봉화군인가?
처음엔 강릉, 여수, 통영처럼 어느 정도 관광 인프라가 있는 도시를 고려했다. 그러나 그러한 도시는 이미 많은 디지털노마드가 다녀갔고, 콘텐츠도 넘쳐났다. 필자는 되도록 알려지지 않은 지역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런 기준으로 찾은 곳이 바로 경상북도 봉화군이다. 봉화군은 인구 약 3만 명, 면적은 넓지만 대부분 산지로 구성된 군 지역이다. 경북 북부에 위치하며, 안동, 영주와 가까운 위치지만 대중교통 접근성은 좋지 않다. 대신, 이런 조건이야말로 진짜 시골살이를 경험하기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진짜 IT노동자가 이런 곳에서 ‘일하면서 살 수 있는가’를 실험하고 싶었다.
2. 숙소 선택 – 고택형 민박에서의 한 달
봉화읍에서 약 10분 정도 떨어진 석포면 외곽의 작은 민박집을 월세 40만 원에 장기 임대했다. 이곳은 한옥을 개조한 고택 스타일 숙소로, 내부는 리모델링이 되어 있어 취사, 난방, 샤워 모두 가능한 구조였다. 방 안에는 낮은 책상과 이불만 있었지만, 필자가 가져간 접이식 테이블과 노트북 스탠드를 설치하니 사무실 분위기가 갖춰졌다. 무엇보다 마당에서 보이는 숲과 계곡이 일하는 내내 평온함을 주었다.
3. 인터넷 환경 – 걱정과 달리 안정적
가장 큰 우려는 인터넷이었다. 봉화군의 외곽 마을이니만큼, 인터넷 환경이 불안할까 걱정됐다. 그러나 실제론 KT 광랜 유선 인터넷이 설치되어 있었고, 속도는 다운로드 85Mbps, 업로드 30Mbps 수준으로 안정적이었다. 평소 줌 미팅, 웹개발 환경에서 Git, Figma 등을 사용하는 필자 입장에서 속도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LTE 테더링도 테스트해 보았는데 SKT 기준 다운로드 40Mbps로, 비상용으로도 충분했다. 오히려 도시보다 간섭이 적어 인터넷이 더 깔끔하다고 느꼈다.
4. 일할 공간 – 나무 아래, 방 안, 그리고 마을 정자
서울에서는 늘 카페에서 일했지만, 봉화에는 프랜차이즈 카페는커녕 카페 자체가 드물다. 대신 필자는 매일 다른 장소에서 일했다. 아침엔 숙소 마당 테이블, 낮에는 방 안 책상, 오후엔 마을 입구 정자. 이처럼 장소를 유동적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리듬이 살아났다. 마을 슈퍼 앞 벤치에 앉아 코딩을 하기도 했고, 계곡 옆 평상에서 글을 쓰기도 했다. 자연과 일상이 연결된 이 작업 공간들은 집중력 유지에 큰 도움이 되었다.
5. 일과 일상의 루틴 – 규칙적이지만 자유로운 삶
필자는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가 주요 업무 시간이다. 봉화에서는 이 루틴이 더 명확해졌다. 새벽 6시에 새소리와 함께 눈을 떠 산책을 하고, 7시에 아침을 해 먹고, 8시부터 이메일을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오전엔 주로 기획 및 분석 업무, 오후엔 개발과 피드백. 점심은 인근 식당에서 8천 원짜리 백반을 먹거나, 숙소에서 간단히 조리했다. 업무 외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산책하거나, 일기를 썼다. 오랜만에 명상도 했고, 유튜브 시청 대신 라디오를 들었다. 디지털노마드라는 단어가 '자유로운 삶'을 의미한다면, 봉화에서의 하루는 그 정의에 딱 들어맞았다.
6.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 – 처음엔 경계, 이후엔 인정
처음 도착했을 땐 낯선 사람에게 경계심을 보였던 마을 주민들이었다. 하지만 매일 슈퍼에서 물건을 사고, 인사를 건네고, 마을 행사에 얼굴을 비추며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됐다. 어느 날은 감자를 한 바구니 얻었고, 또 어느 날은 된장을 선물 받았다. 필자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IT 지식을 공유하기도 했다. 노인회관에서 스마트폰 사진 정리 방법을 설명하거나, 마을 이장의 부탁으로 프린터 세팅을 도와주는 일도 했다. 이런 관계가 쌓이자 '서울서 온 그 청년'은 '우리 마을 사람'으로 받아들여졌다.
7. 교통과 병원 – 불편하지만 예상 가능한 수준
봉화는 교통이 매우 제한적이다. 버스는 하루에 몇 대뿐이고, 택시 호출도 어렵다. 필자는 전동 킥보드를 가져갔고, 20km 내외는 그걸로 해결했다. 봉화읍 내에는 병원이 있고, 약국도 있으며, 응급 상황 시 119를 부르면 빠르게 도착한다고 주민들이 말했다. 다만 ATM은 읍내 외에는 거의 없고,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가게가 많아 현금 준비가 필수다. 이 모든 것이 불편하긴 하지만,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8. 식사와 생활비 – 절제된 소비 구조
한 달간의 봉화 생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식비의 감소였다. 외식 횟수는 일주일에 23회, 대부분 백반이나 순댓국 같은 한식. 나머지는 쌀과 김치, 달걀, 두부로 구성된 식사를 직접 조리했다. 슈퍼에서 장을 보면 대체로 1회 23만 원 선이며, 이틀은 충분히 버틸 수 있다. 총생활비는 다음과 같다.
- 숙소 월세: 40만 원
- 식비: 22만 원
- 교통 및 연료비: 4만 원
- 기타 생활용품 및 잡비: 6만 원
- 카페 및 외식: 6만 원
→ 총합 약 78만 원
서울 생활에서 150만 원 이상 들던 비용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 절감된 비용은 필자에게 '시간의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9. 업무 효율과 심리적 변화 – 깊어진 몰입과 가벼워진 마음
도시에서는 늘 바쁘고 산만한 환경 속에서 일해왔다. 그러나 봉화에서의 업무는 달랐다. 방해 요소가 거의 없고, 미세먼지도 없으며,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환경은 창의적 업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기획한 프로젝트 하나는 봉화에서 초안을 완성할 수 있었고, 글쓰기 속도도 두 배로 빨라졌다. 심리적으로도 불안이 줄었고, SNS 사용 시간이 하루 평균 30분 이하로 감소했다. 자극이 적은 환경은 자율성과 집중력을 극대화하는 조건이라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10. 봉화에서 IT노동자가 살아본 총평
IT노동자에게 봉화군은 명백히 ‘가능한 장소’다. 단, 다음과 같은 조건이 충족될 경우다.
- 자기 통신장비 보유 (노트북, 핫스팟 등)
- 기본적인 자가 해결 능력 (취사, 전자기기 셋팅 등)
- 이동 수단 확보 (자전거, 킥보드 또는 차량)
- 디지털 의존도 조절 능력 (SNS 중독 등)
- 정서적 독립성 (외로움, 고립감 극복)
이 다섯 가지가 갖춰진 사람이라면, 봉화군은 단지 ‘살 수 있는 곳’을 넘어 생산성과 창의력을 회복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오히려 도시보다 더 좋은 작업 환경이 될 수도 있다.
🟥 결론 – 시골이 불편할수록 집중이 깊어진다
봉화군에서 보낸 한 달은 필자의 디지털노마드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빠른 인터넷과 높이 솟은 빌딩 사이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익숙했던 삶에서 벗어나, 산과 바람, 계곡과 마당 사이에서 천천히 일하고 생각하며 살 수 있었다. IT노동자가 봉화에서 살아보는 건 분명 도전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도전 끝에는 단순한 생산성 이상의 보상이 존재한다. 그것은 '자기만의 루틴을 되찾는 것'이고, '정보가 아닌 지혜로 채워지는 시간'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다시 배우는 과정'이었다.
카페는 없지만 바람이 있었고, 빌딩은 없지만 나무가 있었다. 봉화에서의 한 달은 기술로 연결된 삶이 자연과도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은 실험이었고, 그 실험은 분명 성공적이었다.
'지방 소도시 디지털노마드 환경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송군에서 한 달 살면서 느낀 디지털노마드의 장단점 (5) | 2025.06.25 |
---|---|
장성군 작은 마을에서 살아본 후기 – 카페는 없지만 평화는 있다 (6) | 2025.06.25 |
고성군에서의 디지털노마드 체험기 –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원격근무 (2) | 2025.06.24 |
진안군 한 달 살기 – 디지털노마드가 체험한 전북 시골생활의 현실 (2) | 2025.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