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도시의 빠른 일상에 지친 디지털노마드들이 시골로 향하고 있다. 필자 역시 그 흐름 속에서 2025년 봄,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한 달 살이를 감행했다. 단순히 여행이 아닌 ‘일하면서 사는 것’의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인터넷은 제대로 될까? 일할 공간은 있을까? 카페도 없고 배달도 안 되는 청송의 작은 마을에서 디지털노마드로 살아보며 직접 겪은 장단점을 솔직하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 글은 청송군이라는 지역에 대한 단순한 소개가 아니라, 시골에서 IT 노동자로 일하는 현실과 진짜 가능성을 알려주는 체험형 콘텐츠다.
🟦 본문
1. 청송군을 선택한 이유
청송은 경북 북부 내륙에 위치한 인구 2만 명 미만의 군 단위 지역이다. 주왕산 국립공원과 사과로 유명하지만, ‘디지털노마드’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래서 더 끌렸다.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일하며 살아보는 실험을 통해 도시에 익숙해진 내 일상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했다. 외부 자극이 적고, 조용하고, 물가가 저렴하다는 점도 선택에 한몫했다. 필자가 거주한 곳은 청송읍에서도 벗어난 파천면의 작은 마을이었다.
2. 숙소와 인터넷 환경 – 걱정보다 나았지만 준비는 필요
한 달 숙소는 ‘귀촌 체험 주택’으로 등록된 단독주택을 에어비앤비에서 찾았다. 월세 35만 원, 부엌과 욕실이 갖춰져 있었고, 난방은 기름보일러 방식이었다. 가장 걱정했던 인터넷은 유선이 없었고, LTE 무선 공유기로 대체해야 했다. 필자는 미리 준비한 KT 에그를 사용했고, 다운로드 4050Mbps, 업로드 1015Mbps 정도의 속도를 유지했다. 화상회의나 웹 기반 업무는 무리 없이 가능했다. 단, 구글 드라이브 업로드가 많은 작업은 늦은 밤이나 새벽 시간대에 진행하는 게 더 안정적이었다. 시골에서 일하려면 반드시 자체 인터넷 수단을 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3. 일할 수 있는 공간 – 집, 정자, 논 옆 평상
도시에선 카페가 일터였다. 하지만 청송에는 프랜차이즈 카페는 없고, 읍내에 개인 카페가 몇 군데 있을 뿐이었다. 필자가 머문 마을엔 카페가 없었기에 집 안에서 주로 일했다. 오전엔 부엌 옆 테이블, 오후엔 마당 그늘 아래, 때로는 마을 회관 앞 벤치나 마을 입구 정자에서 테더링으로 일했다. 자연 속에서 일하니 정신적인 피로감이 확실히 적었고, 업무 몰입도는 오히려 높았다. 단, 날씨에 따라 야외 업무는 어려운 날도 있었다.
4. 하루 루틴 – 규칙적이지만 절제된 삶
청송에서의 생활은 자연스레 규칙적인 루틴을 만들어주었다. 새벽 6시에 새소리에 맞춰 기상, 7시에 아침 식사, 9시부터 집중 근무. 점심은 직접 만든 김치찌개나 달걀말이로 간단히 해결했고, 오후엔 마을 산책 후 다시 2~3시간의 작업 시간을 가졌다. 저녁엔 책을 읽거나 일기를 썼다. 유튜브는 거의 보지 않았고, 스마트폰 사용 시간도 하루 평균 1시간 이하로 줄었다. 몰입도 높은 하루를 보내는 데 최고의 환경이었다.
5. 식사와 장보기 – 자급자족에 가까운 방식
청송읍까지는 버스로 약 40분 거리였고, 버스는 하루 3~4회 운행되었다. 따라서 필자는 일주일에 한 번 읍내 마트에 가서 대량 장을 보고, 나머지 일주는 저장된 식재료와 마을 슈퍼를 활용했다. 쌀, 달걀, 김치, 두부, 감자, 양파 등 기본 식재료 위주로 식단을 짜고 직접 조리해 먹었다. 가끔 이웃 어르신이 상추, 고추, 감자 등을 나눠주셨고, 생필품은 읍내 택배로 수령했다. 이런 생활은 도시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절제된 소비 구조를 만들어주었다.
6. 교통과 병원, 기타 생활 인프라
청송은 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편이다. 버스는 적고, 야간에는 거의 이동 수단이 없다. 택시 호출도 안 되며, 근처에 편의점은 전무했다. 응급 상황 대비로 가장 가까운 병원 위치를 파악해두었고, 현금 인출은 읍내 농협 ATM을 이용했다. 이런 불편함은 초반엔 크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계획적인 생활을 유도했다. 마치 매일 사용하던 앱을 일부러 삭제하고 사는 느낌이었다.
7.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 – 정은 있지만 거리도 존재
마을 주민들은 대체로 친절했고, 외지인에 대한 배척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관계는 일정한 선에서 유지되었다. 필자가 먼저 인사하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는 적극적으로 응대해주셨다. 그러나 지나친 개입 없이 ‘알아서 살아보게 두는’ 분위기가 오히려 편했다. 디지털노마드로서의 독립성과 지역 공동체의 조화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었다.
8. 장점 – 청송에서 일하며 살아본 이점
- 압도적인 조용함 → 업무 집중도 비약적 상승
- 자연 속 루틴 정착 → 심리적 안정감 확보
- 비용 절감 → 한 달 총지출 70만 원 이하
- 자극 최소화 → SNS, 유튜브 시간 급감
- 자기 관리 가능 → 식사, 수면, 일정 전부 자율 조정
이러한 장점은 단순히 ‘시골이니까’가 아니라, ‘도시보다 의식적으로 삶을 설계할 수 있다’는 데 있다.
9. 단점 – 불편함과 고립감, 기술적 한계
- 교통의 불편함 → 차량 없으면 이동 제한
- 인터넷 환경 제한 → LTE 기반, 사용량 조절 필요
- 병원, 편의점 접근성 낮음 → 사전 준비 필수
- 심리적 고립 → 외향적 성향일수록 정서적 부담 가능
- 카페·도서관 없음 → 대체 작업 공간 부족
이러한 단점은 어느 정도 ‘디지털노마드 생활’의 불가피한 숙명일 수 있지만, 지역 인프라 수준에 따라 체감 정도는 달라진다.
10. 한 달 살이 총비용 및 생활 총평
- 숙소: 35만 원
- 식비: 20만 원 (마트+슈퍼+텃밭채소)
- 인터넷 기기+데이터: 3만 원
- 교통비(왕복+현지): 5만 원
- 생활용품·잡비: 5만 원
→ 총합 약 68만 원
서울에서 한 달 생활비가 150만 원 이상 들던 나에게 청송에서의 한 달은 ‘경제적’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생활의 밀도, 업무의 질, 심리적 여유 모든 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 결론 – 디지털노마드를 위한 청송군의 가치는 충분한가?
청송군은 디지털노마드를 위한 ‘완벽한 장소’는 아니지만, 가성비 최고의 몰입 환경은 제공한다. 인터넷과 교통 같은 기술적 제약이 있지만, 그 너머엔 도시에서 경험할 수 없는 깊은 집중과 정서적 안정이 존재한다. 필자는 한 달 동안 프로젝트를 두 개나 완료했고, 책 한 권을 집필했으며, 삶의 루틴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 카페는 없지만, 정자는 있었다. 편의점은 없지만, 마을 슈퍼와 텃밭이 있었다.
디지털노마드의 본질이 ‘어디서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삶’이라면, 청송은 그 이상을 제공한다. 바로 ‘어디서든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이다. 다시 돌아간다면, 청송은 그 첫 번째 후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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